
서양건축사를 처음 공부할 때 가장 막히는 지점이 있습니다.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같은 기둥 이름을 외우다 보면 어느 순간 "이걸 왜 배우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입니다. 저도 똑같이 겪었습니다. 그런데 시대적 맥락을 먼저 잡고 나서부터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리스, 고딕, 모던 이 세 축만 제대로 이해하면 서양건축사의 큰 흐름이 한 번에 정리됩니다.
그리스와 고딕, 두 시대가 건축에 남긴 것
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447년에 착공되었습니다. 그냥 오래된 건물이라서 유명한 게 아닙니다. 기둥 하나의 높이와 간격, 건물 전체의 폭과 길이까지 수학적으로 계산된 비례 체계 위에 세워진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솔직히 좀 충격이었습니다. 그냥 아름다운 돌기둥인 줄만 알았는데, 그 안에 이렇게 정교한 논리가 숨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스 건축에서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이 오더(Order) 체계입니다. 오더란 기둥의 형태와 비례를 규정하는 건축 양식 단위를 말하며,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 도리아식(Doric Order): 주두(기둥 머리) 장식이 단순하고 기둥 몸통이 굵습니다. 무게감과 안정감을 강조한 형태입니다.
- 이오니아식(Ionic Order): 주두에 소용돌이 모양의 볼류트(volute) 장식이 들어갑니다. 볼류트란 나선형으로 말린 장식 요소로, 도리아식보다 훨씬 가볍고 우아한 인상을 줍니다.
- 코린트식(Corinthian Order): 아칸서스(acanthus) 잎을 모티프로 한 화려한 주두 장식이 특징입니다. 아칸서스란 지중해 지역에 자라는 식물로, 이 잎 모양을 조각으로 재현한 것이 코린트식의 핵심입니다. 이후 로마 건축에 대거 흡수되어 서양 건축 전반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세 가지를 그냥 "장식 차이"로만 이해했는데, 실제로는 건물이 표현하려는 성격 자체가 달랐습니다. 도리아식은 군사적이고 남성적인 건물에, 이오니아식은 좀 더 세련된 공간에 사용됐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이런 맥락을 알고 나서 건축 사진을 다시 보니 훨씬 다르게 보였습니다.
12세기 이후 등장한 고딕 건축은 방향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리스가 인간의 이상적 비례를 추구했다면, 고딕은 신을 향해 수직으로 뻗어 올라가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 쾰른 대성당을 보면 첫인상이 압도적인 높이에서 옵니다. 이게 그냥 된 게 아니라 리브 볼트(rib vault)와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라는 두 가지 구조 기술 덕분입니다.
리브 볼트란 천장 아치의 교차 지점에 뼈대처럼 돌출된 구조재를 설치하여 하중을 효율적으로 분산시키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천장을 더 높이 올리면서도 무게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기술입니다.
플라잉 버트레스는 건물 외부에서 벽면의 측면 하중을 받아내는 아치형 지지대를 말합니다. 이 구조 덕분에 벽을 두껍게 유지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 결과 넓은 창문을 낼 수 있었습니다.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성당 내부를 채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구조 혁신 때문이었습니다.
중세 건축에서 빛은 단순한 채광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신학 사상에서 빛은 신의 임재를 상징하는 요소로 여겨졌습니다. 빛을 최대한 내부로 끌어들이는 건축 설계 자체가 신앙의 표현이었던 셈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된 고딕 성당들 다수가 이러한 빛의 설계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는 점도(출처: UNESCO) 이를 뒷받침합니다.
모던 건축이 지금 우리 도시를 만든 방식
산업혁명 이후 철강과 철근 콘크리트가 등장하면서 건축은 근본부터 달라졌습니다. 재료가 바뀌면 형태가 바뀌고, 형태가 바뀌면 공간에 대한 생각 자체가 바뀝니다. 모던 건축은 바로 그 변화의 산물입니다.
모던 건축의 핵심 원칙은 기능주의(Functionalism)입니다. 기능주의란 건물의 형태는 그 용도와 기능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철학으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루이스 설리반의 말로 집약됩니다.
장식은 불필요한 낭비라는 시각이었고, 건물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점이 중심이었습니다.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 운동은 이 철학을 제도 교육으로 체계화했습니다. 바우하우스란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 설립된 디자인·건축 학교로, 예술과 기술을 통합하는 교육 방식으로 모던 건축 사상을 전 세계에 퍼뜨렸습니다. 이 학교에서 배출된 인물들이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현대 도시 설계에 참여했습니다.
제가 모던 건축을 공부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이 미스 반 데어 로에입니다. "적을수록 더 좋다(Less is more)"는 그의 말은 처음엔 그냥 멋있는 말처럼 들렸는데, 실제 그의 건물 사진을 보고 나서야 이 말이 단순한 슬로건이 아닌 구체적인 공간 언어라는 걸 느꼈습니다. 기둥 하나, 유리 한 장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긴장감이 장식 없이도 충분히 강렬했습니다.
르코르뷔지에의 사보아 빌라는 기능주의 건축의 교과서로 불립니다. 필로티(pilotis), 즉 건물을 지면에서 들어 올리는 기둥 구조를 활용해 1층을 비워두고, 옥상을 정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완전히 새로운 발상이었습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은 한발 더 나아가 자연 지형 위에 건물을 겹쳐 올리는 유기적 건축(organic architecture)의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유기적 건축이란 건물이 주변 자연 환경과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유기체처럼 통합되도록 설계하는 방식입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풍경, 즉 초고층 오피스 빌딩, 공항 터미널, 대형 문화시설 대부분은 이 모던 건축의 직접적인 후예입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건축물 중 20층 이상 고층 건물 수는 2023년 기준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출처: 국토교통부), 이 흐름의 뿌리는 철근 콘크리트와 커튼월(curtain wall) 공법을 기반으로 한 모던 건축 기술에 있습니다.
커튼월이란 건물 외벽을 구조체와 분리하여 유리나 금속 패널로 마감하는 방식으로, 현대 고층 건물의 외관을 결정하는 핵심 기술입니다.
서양건축사는 외울 게 많아 보이지만, 그리스의 비례, 고딕의 수직성, 모던의 기능성이라는 세 키워드를 중심에 두면 각 시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저는 이 세 흐름을 이해하고 나서부터 해외 건축 사진 한 장을 봐도 시대와 맥락을 먼저 읽게 되었습니다. 건축을 공부하다 막히는 분이 있다면, 외우는 것보다 각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원했는지를 먼저 생각해보시길 권합니다. 그게 실제로 훨씬 빠른 길이었습니다.